Munge’s illust life
Munge
소소한 일상의 사물을 그리는 드로잉
언제였을까. 서점에 가서 새로 나온 책들을 고르던 어느 날, 그림으로 가득한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munge라는 필명을 지닌 작가가 그린 드로잉, 일러스트레이션을 묶어 책으로 엮어 놓은 것이었다. 지극히 소소하고 일상적인 기물들을 매우 편하게, ‘쓱쓱’ 그려낸 것들인데도 결코 가볍거나 허술하지 않은 그림이었다. 소박한 재료들을 갖고, 힘을 죄다 뺀 상태에서 가시적 대상의 피부를 편견 없이, 욕망 없이 옮겨 그리는 일은 단지 그 형태의 모방이나 재현에 머무는 것도 아니고 간단히 약호화해 내는 것도 아닌 지점에서 드로잉으로만 가능한 맛을 물씬 풍겨내는 선에서 활발히 전개된다. 담백하고 어눌한 것 같으면서도 묘한 매력을 간직하고 있었다. 사물들은 저마다 다른 형태와 색, 라벨의 이미지를 거느리고 있는데 작가는 그것들을 차별 없이 동등한 선상에서 그려내면서 범속한 것들 안에 내재하고 있는 아름다움이나 감각적인 멋을 섬세하게 찾아내고 이를 공들여 채집한다. 바라보고 발견하는 예민하고 섬세한 눈과 그것을 옮겨 그리고 싶다는 본능적인 모방에의 의지를 지닌 손이 만나 이룬 하모니!
모종의 강박적인 수집벽을 지닌 것으로 보이는 작가가 영수증, 티 백, 포장지, 오일 파스텔, 맥주 캔과 병 등등 자신이 소유하고 소비한 그 모든 사물들의 피부를 그림으로 복기하고 있다. 자신의 삶에서 마주한 모든 사물들을 죄다 그림으로 흡입해내는 힘이 있고 그 사소한 것들을 온전히 애정 어린 시선으로 끌어안은 마음의 결이 넉넉해 보인다. 거의 무차별적으로 모든 사물, 물건의 피부를 탐닉하는 작가는 사물과 사물을 그린 드로잉을 한 쌍으로 수집하고 있다. 또한 매일 일기를 쓰듯이 자신과 함께 했던 사물들의 목록을 기입하고 그 형태, 부착된 라벨(다양한 문자와 숫자, 이미지 등)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수집과 기록(그리기)은 동일선상에서 왕복운동을 한다.
자신의 일회적 삶에서 만나고 소비한 그 모든 것들을 온전히 저장하는 일은 소멸되는 시간에 저항하는 일이자 일상과 미술의 경계를 허무는 일이기도 하고 물건들과 함께 하는 현대적 삶의 고현학적 관심사일 수도 있겠다. 지극히 개인적인 수집품이자 자신의 사적 삶을 진솔하게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수용하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자기 일상에 대하 고현학’ 이라고나 할까. 작가는 “일상적인 소품이나 늘 주변에 널려 있는 사물들, 또는 언제든 구할 수 있는 흔한 소재”가 그림 그리는 대상으로서 흥미를 갖게 한다고 하며 그것을 부담 없이 자유롭게 그리고자 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수집과 그리기는 고스란히 작가의 삶이 되었다. 그러니 이 그림들은 다름 아니라 작가의 삶 그 자체를 투명하게 반영하는 선에서 반짝인다.
일상적 삶에서 접한 그 모든 것들을 관찰하고(이 관찰은 철저히 사물의 형태와 그 피부에 스민 것들을 극진히 모방, 재현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으로 가능하다) 기록하고 스케치하는 것으로 이루어진 munge의 그림은 또한 소비자본주의의 일상에 대한 탐색이기도 하다.
그동안 munge가 펴낸 『그림을 그리고 싶은 날』, 『내 그림을 그리고 싶다』, 『잡동사니 컬렉션』, 『마구마구 드로잉』 책은 온전히 내 수집품이 되었고 가끔씩 나는 그 책들을 펼치면서 소소하고 비근한 사물들이 품고 있는, 아니 그것들을 그림으로 번안해내는 데서 연유하는 담담한 매력을 수시로 접하고 있다.
■ 박영택 (경기대 교수,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