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 수 없는 것들

정대원
Jung Daewon
2024. 12. 12. - 12. 31.

무엇이든 예술이 되는 세상인데, 나는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걸까. 나는 위대한 철학이나 거대한 담론을 그리는 데에는 재주가 없고, 그럴 마음도 없다. 내가 그리고 싶어 마음을 쓰게 되는 것은 ‘버릴 수 없는 것들’이다.

사는 자리가 바뀌면서 이고 지고 살 수 없는 물건들을 정리해 왔다. 그래도 끝내 버리지 못해 내 곁에 머무는 물건들이 있다. 기억이 묻어 있는 것들이다. 내가 작은 사람이었을 때에 아빠가 들고 다니셨던 서류 가방, 멀리서 사는 친구가 구해준 예쁜 망치, 교수님 연구실에서 처음 본 후로 파리에서의 쇼핑을 꿈꾸게 한 차통과 마침내 파리에서 그 차통을 담아 온 종이 가방, 표지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애정하는 작가의 책. 그것들은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어서 특별한 것도 있고, 그저 아름다워서 소중해진 것도 있다. 나는 그런 물건들을 바라보다 그리게 된다.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서 눈에 눌러 담아 곡진히 선을 긋는다. 촘촘히 면을 채우기도 하고, 때로는 물건이 주는 그대로의 느낌이 좋아서 궁리 없이 닮게 그린다. 너무 애를 써서 그려서 무거워지거나 가라앉지 않게, 내가 느끼는 감각 그대로 담백하고 담담하게 맑은 그림이 되었으면 한다.

버릴 수 없는 물건들을 골라 그리면서, 소중한 기억들이 그처럼 차곡차곡 가지런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다르게 보고, 닿을 수 없는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지만 사랑해서, 그래서 차마 버릴 수 없는 것들 앞에서는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을까.

당신이 여태 버릴 수 없었던, 희미해진 기억 하나가 내 그림 앞에서 조금은 선명해지기를.

■ 정대원(작가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