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려야 뗄 수 없는
Kang Sunmee
기억을 간직한 흔적들
프란시스 알리스의 <실천의 모순>, (1997)이란 유명한 퍼포먼스는 멕시코 거리에서 커다란 얼음 덩어리를 하루 종일 밀고 다닌 작업인데 작가는 이 작업에 “때로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무를 초래한다”라는 멋진 부제를 붙였다. 현재 우리가 애써 이루고 있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들은 돌이켜보면 사실 무의미하고 덧없고 쓸데없는 것의 누적이자 결국에는 모두 다 사라지고 말 것들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자본주의는 오로지 생산성과 경제성, 효율성과 유용성만을 강제한다. 미술 역시 그러한 시스템에 철저하게 길들여져 있다. 그러나 예술의 진정한 자리는 어쩌면 무용성, 무의미, 무모함의 영역이자 모든 쓸모 있음에 의도적으로 저항하면서 비생산적, 비경제적 행위가 역설적인 가치가 있음을 드러내는 곳에 있을 수 있다.
강선미는 기존 미술의 관습적 재료를 의도적으로 지운다. 대표적으로 작가는 전시 공간, 벽면에 테이프나 컷팅 된 시트지를 이용해 이미지/텍스트를 남긴다. 물리적인 견고함이나 부피, 질량을 지운 이 재료는 벽과 일체가 되면서 피부에 실루엣으로 붙어나간다. 자신의 존재감을 최소화하면서 동시에 벽과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벽 스스로가 발화하고 있는, 더 이상 작품의 배경이나 지지대가 아니라 작품 자체가 되어 자립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시가 종료됨과 더불어 이 작품/재료는 사라진다는 점이다. 전시가 진행되는 일시적 시간동안 특정한 공간에서, 유효한 생을 살다 마감되는 것은 인간의 유한한 삶을 직접적으로 연상시킨다. 그것은 시간의 한계를 강렬히 인식시키는 일이기도 하고 바로 지금 여기서 미적 체험, 인식 체험과 삶의 경험의 가치를 극대화하게 한다. 장소에 개입해서 일시적으로 점유하고 빠져나오는 이 설치적 모드는 그 공간에 들어온 이들의 기억 속에 강한 흔적을 남긴다. 동시에 공간 또한 테이프가 붙었다 떨어진 모종의 자취를 은연중 간직하면서 자기 나름의 기억을 공유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도 테이프나 컷팅 된 시트지 작업뿐만 아니라 다양한 재료, 오브제를 활용해서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자신의 삶에서 유래하는 다양한 문제의식들을 성찰하는 한편 관람객들로 하여금 자연스레 이 문제에 보편적 감정을 갖고 동참하게 해준다. 그런데 벽면에 설치된 이 라인드로잉 작업은 앞서 언급한 의미 못지않게 단호하고 간결한 획의 맛이 두드러지면 이른바 서체적인 느낌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특히 〈너가방에들어가다〉란 작업의 경우는 그 자체로 회화적인 맛과 미니멀리즘을 연상시키는 절제미, 그리고 필획의 강렬한 선조 구성과 수묵을 연상시키는 흑백의 대조에서 인상적이다. 작가는 복잡한 것들을 단순화하고, 함축적으로 만들기 위한 나름의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근작은 다채로운 재료의 개념적 구사가 특징적이다. 그것은 작품이 단순히 재료를 다루는 것이 아닌 사회적 의미를 전달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다. 이는 다분히 개념적 작품의 성격이며 나아가 미술을 통해 사회에 형태를 부여하려는 ‘사회적 조각’ 개념과의 유사성도 엿보인다. 결국 이는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통해 관자와의 소통을 적극 시도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다.
예를 들어 거울 작업의 경우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기 위한, 자기 정체성의 반영으로 여겨지는 거울의 역할은 지워지고 그 대신 관객들은 그 자리에 잠시 멈춰 서서 주어진 문장을 공들여 읽는 여유와 멈춤의 시간을 제공받는다. 입체작품 <수평적 수직>은 별것 아닌 것들을 공들여 쌓아나가면서 위태로운 높이를 추구하는 모종의 안간힘에 대한 비판적 은유를 풍자한다. 한편 사각형의 목판에 원형의 드로잉을 남긴 <회귀>는 판화를 남기기 위한 원판이 스스로 주체의 자리에서 작품이 되었다. 칼날이 흔적을 그대로 드러낸 목판은 나무 표면의 내·외부를 동시에 드러내면서 음각과 양각이 공존한다. 벽면 스스로가 작품이 내용이 되는 라인드로잉과 유사한 작업이다. 강선미의 근작은 이처럼 전시 공간, 벽면에 테이프나 컷팅 된 시트지를 이용해 이미지/텍스트를 남기는 작가 특유의 방법론을 확장해서 사회적 조각, 개념적 작업으로 이동하면서 삶에서 파생한 다양한 문제를 은유적이고 시적인 조형 언어로 추출해내고 있다. 그리고 그 저간에는 동시대 현대인의 무모한 욕망에 대한 서늘한 비판의 시선이, 상처를 간직한 기억의 흔적에 대한 비애의 시선 등이 뿌리 깊게 드리우고 있다고 말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 박영택 (경기대 교수,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