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덤불, 그리고

이주은
Lee Jueun
2023. 05. 18. - 06. 23.

사물로 만드는 단편. 달과 덤불, 그리고

세상이 고요해졌을 때 주변이 더 가까이 다가온다. 고요함 사이로 놓치고 있던 소리가 들리고, 안보이던 변화가 보인다. 천천히 주변이 내게 다가온다. 지난 3년간 이런 상황을 실제로 마주했다. 거리두기로 인해 세상은 고요해졌고 일상의 멈춤은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게 했다. 텅 빈 도시에도 자연은 존재하고 있었고, 계절의 변화를 도시의 덤불은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놀랄만한 생명력을 보이면서 풀들은 무럭무럭 자라나 도시의 빈 공간을 채우고, 그 풀들의 생명력은 묘한 위로와 관심을 가지게 한다. 도시의 덤불은 작업공간으로 들어왔다. 풀을 그리고 만들고, 찍으면서 풀을 모았다. 한 포기, 한 포기 오리고 풀을 붙여가는 반복되는 과정은 고요한 세상 속에서 만난 몰입과 위안의 시간이었다. 어느새 풀들은 나의 공간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달이 뜨는 밤, 달은 늘 나를 따라다닌다. 숨바꼭질을 하듯이 건물들 사이사이로 달은 모습을 보인다. 내가 달을 따라다니는 것인지, 달이 나를 따라 다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달은 늘 길에서 마주하는 동반자였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모습을 보여주는 달이기에 그렇게 달을 올려다보며 소원을 비나 보다. 그 많은 염원을 담은 달도 쉼이 필요하다면 땅에 내려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잠시 숨을 고르기를 바래본다. 나의 작업이라는 것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생활에 관한 시선, 그리고 사유에 관한 기록이다. 나의 시선과 웅얼거리는 독백을 모은 단편이다. 만남과 이동의 과정에서 나는 유난히 사진 찍기를 많이 한다. 제대로 찍는 것이 아닌 그야말로 그냥 찍는다. 찍은 사진들은 주변과 사물이 더 많다. 사물과 주변, 사이만으로도 그 날의 대화와 감정, 사람을 기억하게 한다. 버릇 같은 지독한 나의 기록방식이다. 사람이 부재한 정적이 감도는 사물은 시간과 흔적, 체취가 남아있다. 겹과 결을 지니고 있다. 사물이 가지고 있는 깊이를 읽어가는 과정은 삶에 대한 나의 시선과 사유의 여정이다. 사물은 시간이 담겨있고, 시선이 담겨있다. 사물로 단편을 만든다.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겹과 결을 지닌 사물들이 모여서 이루는 단편이다. 전혀 연결점이 없는 것이 모여 관계를 이루고 시간이 더해지면서 깊이와 사연이 축적되듯이 나의 작업에서 사물들은 생경한 단편을 이룬다. 쉼을 기대하는 달, 도시 속에서 강한 생명력으로 숨쉬고 있는 덤불은 경험해보지 못했던 특별했던 몇 년간 몰입과 위안과 동반자였던 사물이다. 어느 시 한편에서 만난 “침묵하고 있는 수많은 덤불이 도시의 외곽을 둘러싸고 있다.” 라는 구절이 주문처럼 입에 맴돌았던 기억이 있다. 이번 작업을 하는 시간은 이런 덤불을 마주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주변의 맥락을 지워낸 달과 덤불이 나의 사물이 되었다. 이번 전시는 이런 사물들을 만나는 여정, 시간과 인상과 기억을 담은 기행이다. 그리고 이 단편이 모인 무대이자 풍경이다. 여기에 하나 더 “그리고”를 더해본다. 그리고”는 나에게는 끝을 예측할 수 없는 다시 시작되는 출발점이다. 뒤에 무엇이 나올지에 대한 기대감을 준다. 의외로 세상에는 시선을 기다리는 사물이 많이 있다. 새롭게 등장하는 것으로 인해 다시 단편은 시작한다. 그래서 나의 단조로운 일상도 기대할 만 하다.

■ 이주은(작가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