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bel story 24
Krasnogorie
글 | 레이블갤러리
얼핏 보기엔 소시지를 포장하기에 지극히 평범한 소고기의 마블링이 프린팅 되어있는 디자인이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라벨 디자인,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하얗고 빨간 무늬들이 뒤섞여 어떠한 풍경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고기의 가치를 좌우한다는 마블링. 붉은 고기 속에 마치 대리석 문양과도 같은 새하얀 지방이 뒤섞여 오묘한 무늬를 만들어낸다. 대형마트에서나 고기를 굽기 전 그것들과 마주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조금 생경한 기분이다. 새빨간 색 때문일까. 살아있는 것인지 죽은 것인지 매우 낯설다가도, 식욕을 자극하기에 아주 적절한 색감이라는 생각도 든다.
Krasnogorie라는 러시아의 소시지 브랜드. 이들은 제품을 포장하는 패키지 디자인에 이러한 마블링 패턴을 조금은 생소한 방식으로 활용하였다. 러시아어인 Krasnogorie는 영어로 Red mountain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들은 육류라는 제품의 특성과 브랜드 이름에 걸맞는 특징을 적절히 조합하여 패키지를 디자인한다. 전면에 붉은색과 얇고 굵은 흰 선들이 산맥, 농장, 집, 가축 등의 형상을 묘사한다. 굽이굽이 솟아 잇는 산맥 사이에 작은 집과 동물들이 자리하는데 그 풍경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 위로 브랜드 로고와 제품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기입된 작은 사각형 모양의 라벨이 자리한다. 바탕 라벨과 달리 이곳에는 정보를 담는 텍스트가 주를 이룬다. 수평, 수직으로 글자들을 배치하기 위한 그리드가 사용되는데, 이는 가독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또 바탕과의 구분을 뚜렷하게 짓는 기능을 한다. 이러한 포맷이 제품 라인 전반에 걸쳐 라벨, 태그 등에 사용된다.
로고의 폰트는 Proxima Nova라는 서체를 사용하였다. 텍스트가 보다 선명하고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조금은 기괴해 보이나 특징이 있는 것을 택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라벨 디자인에 사용된 풍경화가 목판화의 방식으로 제작된다는 것이다. 브랜드 이미지를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적인 방법을 택했다고 한다 목판화와 목각의 중간에 해당하는 부조 판화인 ‘리노컷’[1]이라는 판화 기법을 사용했다. 작업 방식을 손에 익히는 것부터 적합한 인쇄소를 찾는 일까지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고 한다. 굉장히 정성스러운 작업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으로 탄생한 배경의 삽화는 단순히 라벨 디자인을 넘어 하나의 ‘작품’이라 보아도 무방할 정도이다.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아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라벨 디자인들이 있는가 하면 Krasnogorie의 풍경처럼 좀 더 가까이, 자세하게 보고 알아가며 얻게 되는 또 다른 자극이 있다.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온전히 표현하기 위해 충분한, 그러나 쉽지 않은 방법을 택한 Krasnogorie 라벨은 유행에 휩쓸려 쉽게 바뀌어 버리는 것들과는 분명히 다른 느낌이다.
각주:[1] 리노컷 : 19세기 중반에 발명된 판화 기법으로 목판화와 목각의 중간에 해당하는 부조 판화. 두꺼운 리놀륨 판을 조각도와 끌로 깎아 내는 볼록판으로서 목판화에서 발전한 형태이다. 따라서 인쇄 방법은 목판화와 같다. 정교하고 자연주의적인 효과보다는 선이 굵고 단순화된 형태의 표현에 적합하기 때문에 장식적인 대형 색채 판화의 제작에 자주 사용된다. (출처 : (세계미술용어사전, 1999., 월간미술))
참고:https://www.packagingoftheworld.com/
이미지출처: https://www.packagingoftheworld.com/